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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방

Holiday - Bee Gees


영화'인정사정 볼것 없다'에 삽입되어 뒤늦게 히트한 '비지스'의 바라드 곡이다.킬러 장성민<안성기분>이

살인을 저버리는 장면에서 깔리는 배경 음악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잔인한 폭력장면을 순화시켜주는

역활을 했다.안성기씨는 필자가 진행하는 골든디스크에 출연해 이 곡에 대해 1988년 탈주범 지강현 사건에

연관된 노래라고 얘기했지만 확인결과 지강현이 자살하기전 듣고 싶다고 한 노래는 '스콜피온스의 <Holiday>로

알려졌다<동명이곡.>에서 온 착각으로 생각됨>.변신의 천재 비지스'오랜경험과 음악적 변신을 통해 팬들을

즐겁게 했던 '비지스'의 초기 음악세계가 잘드러난 작품이다.단조롭지만 아름다운 멜로디와 고운 노랫말

휴일같이 편하고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노래로 비지스 3형제의 보컬 하모니가 일품이다


Holiday -- Bee Gees

    Bee Gees는 1946년생인 Barry Gibb과 1949년생인 쌍동이 동생

    Maurice 및 Robin 3형제가 1960년대 초에 결성한 영국 출신 그룹이다.

    Bee Gees라는 그룹 이름은 Borthers Gibb의 첫 글자들을 따서

    B.G.'s라고 했다가 나중에 Bee Gees로 고쳤다. Bee Gees는

    가수로서 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대단한 활약을 했다.

    이들은 영국으로 주 무대를 옮겨 해가 지지 않는
    비지스 왕국의 발판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이들이 영국으로 돌아가 처음 발매한
    1967년 중반에 발표된 앨범은 [New York Mining Disaster 1941]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앨범은 미국과 영국 차트에서 20위권에 오르는 성적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 무렵 비지스의 히트곡에는 우리나라 영화 [인정 사정 볼것 없다]의 삽입곡인
    ‘Holiday’와 ‘To love somebody’와 같은 곡들이 있다.

    1977년에는 영화 Saturday Night Fever의 음악을 작곡했는데
    그 영화에 삽입된 Stayin' Alive, How Deep Is Your Love 및 Night Fever는
    각기 챠트 1위를 기록했고, 그 앨범도 24주 동안이나 1위를 유지하는 성공을 거뒀다.
    언저리에 Bee Gees가 작곡한 노래들 5개가 동시에 top 10을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3년 1월에 Maurice Gibb이
    사망한 이후로 Bee Gees는 실질적으로 해체되었다.
    有錢無罪, 無錢有罪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10월 16일
    난데없는 인질극이 생생하게 TV로 생중계되기 시작했다.
    범인들은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감되던 중 탈출한
    12명 중 지강헌 등 4명. 이들은 8일간 서울각지를 돌며 강도행각을 벌이다
    16일 경찰에 포위되자 북가좌동의 어느 가정집에 침입해
    일가족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했다.

    방송사와 기자는 그들이 요구했으며,그 순간부터
    이 사건의 결말은 예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특이하게도
    지강헌은 경찰에게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틀어줄 것을 요구했고,
    스피커로 음악이 흘러나오던 도중 4명중 가장 어렸던
    강영일을 제외한 3명은 모두 죽음을 맞았다.
    지강헌은 노래를 들으며 깨진 유리조각으로 목을 찔렀고,
    인질구출작전에 나선 경찰은 인질의 비명소리에
    지강헌에게 총격을 가했다.
    결국 그는 이송된 병원에서 사망했다.
    또 다른 한명은 스스로 가슴에 총을 쏴 자살했으며,
    다른 한명은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 (당시에 경찰은 비지스가 아닌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를 틀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그 전 해 극적인 직선제 쟁취와 88년 올림픽 4위,
    늘상 새 정권(노태우집권기를 새 정권 이라 부를 수 있을 지 의문이지만..)이
    집권하면 내거는 '선진국진입'의 환상에 잠시나마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은
    본질적인 부조리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당시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새마을 사업 비리로 70억을 횡령한 것과 관련
    7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복역 2년 3개월만에 풀려났다.
    지강헌은 550만원을 훔친죄로.. 보호감호 포함 17년을 선고받았다.

    ..


    1946년생인 배리 깁(Barry Gibb)과 1949년생 쌍둥이 형제인 로빈 깁(Robin Gibb),

    모리스 깁(Maurice Gibb)으로 조직된 이 3인조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오스트레

    일리아로 이주한 뒤, 1958년부터 ‘Brothers Gibb’의 머릿 글자를 따 ‘B.G.'s’란 이름

    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62년부터 레코드를 발표하며 오스트레일리아 음악시장

    에서 큰 인기를 끌던 이들은, 비틀즈(The Beatles)의 전세계적 성공에 큰 자극을 받

    아 1966년 영국으로 거점을 옮겨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게 된다.

    영국에서 매니저 로저 스틱우드(Robert Stigwood)를 만난 이 3형제는, 곧바로 그와

    계약을 맺고 빈스 멜루니(Vince Melouney), 콜린 피터슨(Colin Petersen) 등 2명의

    멤버를 더 가담시켜 완전한 밴드 포맷을 짰다

    1967년, 새로운 비지스가 발표한 첫 싱글 ‘New York Mining Disaster 1941’이 영국

    에서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하자 ‘Holiday’, ‘To Love Somebody’,

    ‘Massachusetts’ 등의 후속곡들이 줄줄이 히트대열에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

    이 되었다(특히 ‘Massachusetts’는 비지스 최초의 영국차트 1위곡이었다). 게다가

    데뷔앨범 [The Bee Gees 1st]는 미국에서도 차트 7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며 비

    지스의 명성을 미국에서도 널리 떨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로도 비지스의 성공가도는 ‘World’, ‘I've Gotta Get A Message To You’ 등의

    잇단 대히트로 거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69년 발표된 더블앨범

    [Odessa]는 결과적으로 밴드의 균열을 야기하게 되는데, 밴드의 리더였던 배리

    깁이 이 앨범을 통해 다소 실험적인 비전을 표출하자 평소부터 비지스의 음악성이

    못마땅했던 빈스와 콜린이 탈퇴를 선언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이전부터 솔로활동에 뜻을 두고 있던 로빈 깁마저 팀을 떠나는 상황에 처하

    자 비지스는 사실상 와해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남겨진 배리와 모리스는 2인조 진

    용으로 어찌어찌 [Cucumber Castle]이란 앨범을 발표하긴 했지만,

    결국 1970년 로빈이 다시 팀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하고서야

    비지스의 온전한 컴백이 성립될 수 있었다.

    .

    배리, 모리스, 로빈의 3인조 라인업으로 다시 돌아온 비지스는 일단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를 미국차트 넘버원에 올려놓으며 화끈한 복귀 신고식을 치

    른 뒤, 한동안 성공적인 활동을 영위하다가 197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거처를 옮기며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대단히 현명한 것이었다. 그들은 한창 폭발 직전에 있던 디스코의

    열기를 지근거리에서 체득할 수 있었고, 1975년 앨범 [Main Course]에서부터 그러한 성

    향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 앨범에서는 ‘Jive Talkin'’이 차트 정상에 오르는

    대히트를 기록하였다

    물론 비지스의 야심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1976년 ‘You Should Be Dancing’이란 곡을

    또 한차례 넘버원에 올려놓으며 디스코의 슬슬 선두주자로 부각되기 시작한 비지스는,

    1977년 전세계 극장가를 석권한 대흥행작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의

    영화음악을 맡으며 드디어 필생의 대박을 터뜨리고야 만다. ‘Stayin' Alive’, ‘How Deep

    Is Your Love’, ‘Night Fever’(모두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 등 비지스를 대표하는

    대히트곡들이 이 사운드트랙을 통해 배출되었으며, 배리 깁의 닭살 돋는 가성 창법이 디

    스코의 상징처럼 부각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사운드트랙 앨범은 그 해 그래미의

    ‘Album Of The Year’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즈음 비지스는 애지중지하던 동생 앤디 깁(Andy Gibb)의 가수 데뷔를 적극 지원

    하였고, 앤디 역시 형들의 막강한 후광을 업고 넘버원 히트곡들을 양산해내며 세계

    적인 아이들 스타로 부각되었다. 한편 비지스는 1979년에도 비슷한 성향의 앨범

    [Spirits Having Flown]을 발표하고, 넘버원 히트송 ‘Tragedy’를 배출해 내며 디스

    코 붐으로 인한 이득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는 이들도 다소 침

    체기를 맞게 되는데, 그 사이 배리 깁은 작곡가로 활동하며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를

    통해 수많은 히트곡들을 빚어내는 수완을 발휘하였지만 이미 전성기가 지난 밴드의

    침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1988년에는 그토록 아꼈던 동생 앤디가 약물중독

    으로 30세의 나이에 사망하는 비극까지 겪게 된다.

    1997년에야 앨범 [Still Waters]로 플래티넘을 획득하며 왕년의 위신을 회복한 비지

    스는, 같은 해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는 감격을 누렸다. 2001년에도 이들은

    [This Is Where I Came In]을 차트 16위에 올려놓는 저력을 과시하며 21세기에도

    비지스의 신화가 여전할 거라 강변하였지만, 2003년 1월 21일 모리스 깁이 심장마비

    로 세상을 떠나자 더 이상 비지스라는 이름을 지속시킬 여력이 없게 되고 말았다.

    결국 비지스는 모리스 깁의 죽음과 함께 45년간에 달하는 긴 역사를 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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